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CHAGE and ASKA (문단 편집) === 포니캐년 시대 전기 (1986년~1990년) === [[파일:NQqiJLH.jpg]] 1986년 1월 2일 일본 [[부도칸]] 콘서트 중에 아스카가 '올해는 반드시 베스트텐에 3곡을 진입시키겠다.' 고 선언하였다. 새 소속사로 이적한 후의 첫 싱글이기도 했고 그간 싱글 판매가 상당히 저조해 지는 중이었기도 하였다. 또 이 당시만 해도 '레코드 회사를 옮긴 가수가 성공한 적이 없다.'라는 것이 업계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반드시 히트해야만 한다'라는 절박함도 있었다고 한다. [youtube(D7UkF0PUgFo)] 이런 상당한 압박감 속에서 2월 5일 싱글 'モーニングムーン(모닝 문)'을 발표한다. 차게아스로서는 상당히 심혈을 기울인 역작으로 그동안 익혀 온 일렉트로닉 팝에 새로이 록의 색채를 섞으며 동양적인 정서를 가미한 그들만의 독특한 색채를 내는 데에 성공하였고 또한 당시 유행하고 있던 단순명료한 멜로디 라인, 귀에 잘 들어오는 후렴구를 사용한 음악들에 비해 적극적인 반음과 멜로디 라인의 고저를 활용하였으며 30초 이상의 간주가 두번이나 들어가는 것에 [[신디사이저]]를 대폭 활용하여 근미래적인 느낌을 내는 것에 성공, [[엔카]], 촌스러움, 이도저도 아닌 [[포크]] 등으로 대표되던 그들의 이미지를 선구적인 팝 아티스트로 끌어올리는 것에 성공하였다. [[파일:CNl4kul.jpg]] 당장 싱글 자켓만 보아도 이런 근미래적인 느낌을 내는 것에 주력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부터 차게는 [[선글라스]]가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싱글 전면의 C&A 마크도 이 싱글부터 사용되었다. 앞서 선언했던 [[오리콘]] 베스트텐은 최고 11위로 아쉽게 성공하지 못했으나 17주간 차트에 머무르며 대히트를 치게 된다. 그야말로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버블기]]의 차게아스의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수작으로 이후 [[아리요시 히로이키]]의 사루간세키(猿岩石)가 커버하기도 하였다. 이후 싱글 '黄昏を待たずに(황혼을 기다리지 않고)', 'Count Down', '指環が泣いた([[반지]]가 울었다)' 등 이 해에만 총 네 장의 싱글을 내는 등 활발히 활동을 이어간다. 12월 31일에는 [[후지 테레비]]가 야심차게 추진한 '세계홍백'에 출연하여 [[런던]]의 특설무대에서 위성중계로 공연을 펼친다. 원래는 12월 31일에는 일을 안한다라는 야마하 소속시절부터의 폴리시가 있었지만 워낙 무대가 무대인지라... 같이 출연한 해외 아티스트가 무려 [[로드 스튜어트]], [[빌리 오션]], [[A-ha]]. '指環が泣いた'를 같은 무대에서 공연하기도 하였으며 A-ha로부터는 작곡방법이나 전주의 의미 등에 대해 질문을 받기도 하였다. 이때 만났던 스탭들이 이후 아스카의 영국에서의 음악활동에의 기반이 되었다. 1987년 베스트 앨범인 'SUPER BEST'를 발매한다. 무려 3년간 오리콘 차트에 랭크인 되며 롱히트를 기록하였다. 10월 5일에는 싱글 'ロマンシングヤード(로맨싱 야드)'를 발표한다. 차게 작곡답게 강한 8비트의 록사운드가 특징인 곡으로 이 싱글을 전후하여 더더욱 록의 색채가 강해지게 된다. 싱어송 라이터 듀오로서는 드물게 다른 작사가의 작사인 싱글이기도 하다. 1988년 싱글 '恋人はワイン色(연인은 [[와인]]색)'을 발표한다. 최초로 [[드라마]] 타이업[* [[테레비 아사히]]의 'あぶない雑居カップル(위험한 잡거 커플)']된 곡이기도 하다. 올드 팬들에게는 잘 알려진 '[[https://www.youtube.com/watch?v=vfyrwU_LHrI|전설의 와인 사건]]'이 있었던 싱글이다. [[타모리]]가 진행하는 '뮤직 스테이션'에 출연했을 당시 싸구려 자켓을 협찬받은 엄청난 고가의 흰 자켓이라고 속여 차게에게 입힌 후 무대 후 인사를 하는 척하며 아스카가 [[와인]]을 쏟는 일종의 [[몰래카메라]] 기획이었는데... 정작 아스카는 노래 부르기 전부터 말도 한마디 못하고 어디에 쏟아야 하나를 두리번거리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장면이 백미. 1988년10월5일 [[밤의 히트 스튜디오]]1034회때 출연해서 Trip을 불렀었다. [[히카루GENJI]], [[코이즈미 쿄코|쿙쿙]] 등에게 멤버 각각 작곡, 작사를 활발히 하기 시작한 것도 이 맘때 쯤부터. 특히 [[히카루GENJI]]에게 작사, 작곡해준 'パラダイス銀河(파라다이스 은하)'는 1988년 내내 사회 전체를 뒤흔든 '히카루GENJI 붐'에 힘입어 12월 31일 일본 레코드 대상을 수상하며 차게아스의 작사/작곡가로서의 입지를 분명히 하게 되었다. 1989년 데뷔 10주년을 맞는다. 3월 8일에는 싱글 '[[https://www.youtube.com/watch?v=lukTLTVoAno|WALK]]'를 발표한다. 이 싱글을 전후해서 '단순히 유행하는 음악이 아닌, 히트를 노리는 것이 아닌 자산들만의 음악을 추구하는' 쪽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이후 ASKA의 에세이집에서도 '그런 의미에서 WALK는 반드시 필요한 곡이었다.'라고 했을 정도. 4월 19일 조간신문의 TV 음악방송 출연란에 '차게 앤 아스카 중대발표!'라고 쓰여 있던 것으로 인해 해산 소동이 있었다. 실제 방송에서는 이후 '자신들만의 음악'을 찾기 위한 휴식을 갖기 위해 아스카는 영국을 건너가 [[런던]]에서 작사/작곡에 전념하고 CHAGE는 그룹 'MULTIMAX'를 결성, 독자적인 음악활동을 이어가게 될 것을 발표하였고 분명히 해산은 부정하였음에도 해산설은 그 이후로도 내내 그칠 줄 몰랐다. 4월 30일부터는 데뷔 10주년을 맞아 전국을 돌며 행해진 59회의 기념 콘서트인 'CONCERT TOUR '89 ~10 years after~'투어가 시작되었다. [youtube(djfjKhzPzGU)] 6월 21일 싱글 'LOVE SONG'을 발매한다. [[일본항공|JAL]]의 [[오키나와]] 캠페인 송으로 발표되었는데 마치 우리나라 30대 후반 이후 분들이 '[[대한항공]] CF'하면 'Anita Kerr Singers'의 '[[https://www.youtube.com/watch?v=pm2sammfLBM|Welcome to my world]]'를 떠올리는 것처럼 'JAL CF'하면 떠올리는 곡들 중 하나가 되며 길게 히트한다. 이 즈음은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버블]]이 붕괴하면서 아이돌의 시대가 끝나고 밴드 음악의 커다란 붐이 일었던, 록 음악의 대유행이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싱글을 기점으로 다른 록에 비해 차별화된 차게아스만의 '따뜻한 음악을 만들고 싶다'라는 의도가 강해지게 되었다. 'LOVE SONG'은 이러한 의도 하에 작곡된 곡으로 심장의 박동을 연상케 하는 전주에서 건반으로 이어지는 주 멜로디와 차게아스만이 가능한 하모니를 살린 수작. 우리나라에서 2002년 [[조장혁]]이 리메이크하여 [[명랑소녀 성공기]]의 OST로 쓰인 곡으로 유명하다. 참고로 위의 동영상은 1989년 버젼. [[https://www.youtube.com/watch?v=_wvAzWIjKIg|1992년 재발매한 버젼]]과 비교해보면 곡은 그대로인데 차게의 올백 머리가 모자로 바뀐 것만 다르다. 정확히 데뷔 10년이 되는 8월 25일을 기해 팀 명을 'CHAGE&ASUKA'로 바꾸고 앨범 'PRIDE'를 발매한다. 2CD 사양으로 CD1은 오리지널 앨범을, CD2는 이전 발표한 노래들을 재수록한 앨범이다. 이 앨범으로 첫 앨범인 '熱風' 이후 두번째 오리콘 앨범차트 1위를 하게 된다. 9월 15일 [[오키나와]]를 끝으로 10주년 기념 콘서트 투어가 종료, 그리고 이 이후 차게아스는 반 년 이상의 휴지기에 들어간다. 사실 그 사이에도 해산설은 전혀 가라앉을 줄 몰랐기 때문에 10주년 기념 콘서트 매 공연'''마다''' MC에서 '이것이 차게아스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생각하신 모든 분들, 정말로 죄송합니다. 저희는 해산하지 않습니다~'라며 해산설을 부인해야만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